광명사
건강메일에서 월보를 패스해 드립니다.
충무공 이야기
보훈의 달 6월!
우국충절로 헌신하신 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국제엑스포가 열리고 있는 여수에는~
전라남도
광양항과 여수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총 길이 2260m의 국내 최대 초대형 해상 현수교인 이순신대교가 임시 개통되었다.
이 대교는 산업적인 목적 외에도 우리 민족의 정서적 의미가 포함되어있어
보인다.
이순신대교의 중심교각 사이의 길이가 1545m로 설계되었다.
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도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대교로 연결되는 여수는~ 장군이 처음으로 해군제독으로 부임했던 전라좌수영 본영이었다.
광양만 앞바다는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장군이 순국한 노량해전의 민족적 승리를 이뤄낸 곳이기도 하다.
충무공이 마지막전투에서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는 자살설이 나오는데 이는 유감이라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자면 조선사회의 극도의 부패상황이 상정되어야한다.
그런데 그렇게 부패한 조선이었다면 어떻게 전쟁을 사실상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
또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이 조선사회를 이끌고 있었다면 어떻게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그 체제 안에 높은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충무공의 마음 안에 있는 우국충절의 극치에서 우러난 올바른 사생관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장군이 백의종군 이후 다시금 3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받아 열세한 병력으로 13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여 나라를 구한 명량해전 직전, 비장한 마음으로 그를 따르는 부하장병들에게~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죽기를 각오하고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라고 호령하였다.
그는 최후의 전투인 노량 해전에서 실지로 죽기를 각오하여 조국을 구하였고, 그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들의 가슴속에 우국충절(憂國忠節)의 혼(魂)으로 살아 있다.
충무공은 한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후회없이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조선의 군인이자 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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