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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리스도교 영성과 불교의 참선(參禪)

2004/03/01

내    용

그리스도교 영성과 불교의 참선(參禪)

  그리스도교 영성과 불교의 참선(參禪)  

1.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이다. 이러한 종교 다원적 현상은 각각의 신앙 전통을 따르는 모든 신앙인 각자에게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하나의 도전이다. 타종교에대한 성숙한 이해는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타종교와의 대화 없이는 나의 종교의 진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는 자각이 종교간의 대화의 시작이 될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함께 공존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종교간의 대화는 한 종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부가적인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그 본질을 목적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단지 여러 종교를 비교종교학적인 시각으로 무미 건조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입장에서 타종교 전통도 또한 대등한 존경심으로 대할 수 있어야 편견을 배제할 수 있다.

자신의 종교와 타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종교라는 그릇이 담고 있는 내용을 진리라 한다면, 우선 그릇에 해당되는 종교의 제도적인 틀의 다양성은 서로가 인정하면서 그 그릇안에 담는 내용에 있어서는 진리의 궁극성에 비추어 보면 상호 일치하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그 일치를 구체화하는데 영성적인 합일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본고에서는 그리스도교의 14세기 영국의 영성을 대표하는 「무지의 구름」과 선불교의 간화선인 「무자 화두(無字話頭)」를 살펴보면서 종교간의 근접성을 확인해 보기로 한다.   

 
2. 그리스도교가 타종교를 대하는 입장

그리스도교는 불행하게도 타종교에 대하여 지극히 편협한 태도를 지녀 왔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오직 선교의 대상이며, 회개의 대상이라고 말해 왔으며 심지어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교회와 동일시되는 과오를 범해 왔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 보면 신앙에 대한 배타적인 편견을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우물가에서 이교도인 사마리아 여자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행위나, 로마 관리들에 대한 태도는 비록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진실한 신앙심을 지닌 경우에는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셨다.

우리는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타종교인과 친구가 될 수 있으나, 종교의 제도적인 측면에서 타종교를 바라볼 때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기가 어려운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타종교에 대한 우월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종교간의 대화를 단절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향으로 살펴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러한 종전의 태도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보게 된다. 즉 타종교 전통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깊게 성찰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종교 신자들과 더불어 지혜와 사랑으로 서로 협력하기를 원한다.1)

 

3. 종교간의 영성적 유대의 증진

그리스도교의 영성과 선불교의 깨달음에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역정이 동질적인 특성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의 동질성을 그리스도교 14세기의 영국의 영성의 저작물인 「무지의 구름」과, 선불교의 간화선을 대표하는 무문관의 제 1측 「무자 화두」를  근접시켜 보기로 한다.

(1) 그리스도교적 입장의 영성과 불교의 깨달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성(spirtuality)은 '섞인 것이 없는 순전한 비물질성'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적어도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이나 성징 또는 천부(天賦)의 천성을 영성이라 한다.

이러한 영성이 독립된 학문적 체계를 갖추기는 17-18세기에 이르러 신학이 각 분과로 전문화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성 신학(spiritual theology)은 영성 생활의 성격과 본질은 규명하고, 완덕(完德)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스도교적 영성이란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도달하려는 빠스카적 삶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3단계, 즉 정화(淨化), 조명(照明), 일치(一致)를 거치면서 발전하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다.

정화란 죄에서 정화되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심신을 강화하는 단계를 말하고, 조명은 '그리스도'를 입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단계를 말하고, 일치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행복을 느끼는 단계를 말한다.

이러한 3단계는 자신의 죄를 멀리하고 덕행을 실천하려는 노력에 의한 수덕적인 요소와 하느님의 성령의 도우심에 이끌리어 하느님의 내밀한 지식에 접근하는 직관, 계시, 신비적인 일치 등 신비적인 요소가 있다. 이들 두 요소는 하나의 영성 생활에 두 관점이었으며, 신비 생활은 수덕 생활의 발전한 결과 자연히 도달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리스도교의 수덕적인 요소와 신비적인 요소는 불교의 깨달음에 있어서는 점수(漸修)와 돈오(頓悟)가 비교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교의 수덕적인 요소는 점수, 그리스도교의 신비적인 요소는 돈오와 대비해도 무리는 아니다.

영성의 경향을 말할 때는 엄격주의, 이성주의, 정적주의, 경건주의로 나누는데 이러한 분류는 영성의 경향이 사변적이냐 감성적인가를 먼저 구분하고, 이들이 긍정의 길(Via positiva)이냐 부정의 길(Via negativa)이냐를 따지게 된다. 예컨대 사변적이면서 부정의 길이라면 엄격주의이며, 긍정의 길이라면 이성주의이다. 또 감성적이면서 부정의 길이라면 정적주의이며, 긍정의 길이라면 경건주의가 된다. 여기에서 선불교의 참선과 관련지으면 정적주의적인 요소가 깨달음에 보다 근접한 경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선불교적인 깨달음의 입장과 그리스도교의 영성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산스크리트어의 bodhi, 영어의 enlightenment)은 실재의 본성에 대하여 완전하며 직접적인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실존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 일종의 체험을 말한다.

불교의 전형적인 전기에 의하면 고타마 붓다는 4단계의 선정(禪定)에 몰입했다. 첫번째 단계에서 그는 자신의 주의를 외부의 사물로부터 자신의 내면으로 돌렸다. 두번째 단계에서 더 이상 산만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들어갔다. 세번째 단계에서 차분히 가라앉은 냉정한 희열을 느꼈다. 네번째 단계에서 쾌락과 고통, 행복감과 걱정 등 모든 종류의 대립된 감정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바로 이 네번째 단계가 '순수하고 절대적인 깨달음의 상태이며 정적(靜寂)의 경지'이다. 이러한 네 단계와 그리스도교의 정화, 조명, 일치의 3단계는 서로 대비되는 깨달음의 단계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고 선불교가 발전하자 깨달음의 체험은 종래에는 경전에 근거하여 점차 점차 깨달음에 이르는 점수(漸修)가 강조되던 선정(禪定)이 특히 혜능(慧能638-713) 선사(禪師)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르러 크게 변화된다. 즉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가르침 이외에 따로 전하며,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르쳐서 본래의 성품을 봄으로써 깨달음을 이룬다-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라는 어구에 잘 나타나 있듯이 돈오(頓悟)를 주장하며, 선의 핵심적인 요체인 깨달음은 어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의 본성을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며, 단순성에의 귀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러한 체험과 단순성을 '어린이와같이 되지않고는 하느님나라에 들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음은 대단한 근접성으로 보아진다.

이같은 체험을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에노미야 라살레(Enomiya Lassalle)신부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깨달음은 모든 피조물을 무차별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과 연결되는 초이성적이고 직접적인 지각이다. 이 지각은 자아(Ego)의 붕괴를 통해 참된 자아를 포착하는 것이고, 참된 자기는 피조물인 원천인 한에 있어서, 참된 자기를 앎은 절대자와 접촉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개인의 기질에 따라 형태와 격렬성을 용인하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함없는 기쁨, 평화, 확실성이며, 공포와 의심으로부터의 해방이다."  

 
(3) 「무지의 구름」과 「無字 話頭」

① 무지의 구름

14세기의 영국의 영성사의 대표적인 저작물인 「무지의 구름」은 하느님에 대한 지향을 종전의 경향과는 달리 부정적인 방법론적 경향을 띠고 있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 계시는 불가해적 존재이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을 알 수 없다. 단지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과 합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비가들이 중시하는 하느님과 일치의 기쁨, 즉 「법열적 합일」과 같은 것도 영성적 지표로 삼지 말기를 경고한다. 제 70장에 "우리가 본성적인 이해를 중단할 때 더없이 흔연하게 영적 지식에 도달될 수 있듯이 영적인 이해를 중단할 때 은총을 통해 가장 높은 하느님의 지식에 도달한다"고 한다.  「무지의 구름」이란?  영성에 나아가는 인간이 첫째로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애착을 버리고 난 후 통과하게 되는 망각의 구름을 지나 하느님 앞에 도달하려는 인간이 인간의 지성과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어 차라리 무지의 자세 그러나 열정적 지향을 의지적으로 계속할 때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쌓여 있는 구름을 말하며, 저자는 이 구름 건너에 하느님이 계셔서 언듯언듯 구름 사이로 합일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무지의 구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한계지어준 것으로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나 신적인 지식은 무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무지의 구름은 영성 생활의 모든 것이 관념화된 것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어서 스콜라적인 지성의 활동을 배제한다. 즉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참된 사랑의 발견은 무지의 구름 속에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② 선종 무문관(禪宗無門關)의 무자 화두(無字 話頭).

第一側 : 趙州和尙 因 僧門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評唱 :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一關也. 遂目之曰 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眉毛嘶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麻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豪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嘶.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如呑了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 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虛三昧. 且作麻生提嘶 盡平生氣力 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 一點便著.

조주 화상은, 어느때 한 스님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기에 「무」라고 답하였다.

무문이 평하여 말하기를, 선에 참하려면 조사의 관문을 꿰뚫지 않으면 안된다. 묘오를 얻는데는 심로가 끊어지는 경험을 궁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심로가 끊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모두 풀잎과 나무에 붙은 정령이다.

자아, 말해 보시오. 조사관문이란 무엇인가. 다만 이 한 가지「무」자. 이것이 실로 하나뿐인 관문인 것이다. 여기서 이것을 「선종무문관」이라 한다.

이것을 꿰뚫을 수 있는 자는 다만 조주 혼자만을 상견하는 것뿐 아니라, 역대의 조사들과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 눈썹을 부벼 가며 동일한 눈으로 보고 동일한 귀로들을 수가 있다. 그 얼마나 유쾌한 일이 아닌가.

이 멋진 관문을 투과하고 싶어하는 자는 없는가. 있다면 삼백육십 골절과 팔만사천 털구멍을 가지고 전신으로 한 개의 의심 덩어리가 되어 이 한가지 「무」자를 들어 낮이고 밤이고 하루종일 이것을 문제 삼아 들고 있기를.

이 「무」자를 허무의 무자로 이해하지 말라. 유무의 무자로 이해하지 말라.

한 개의 뜨거운 쇠공을 삼켜버린 것처럼 토하려 하여도 토해 낼 수 없는 이제까지의 악지와 악각(악오)를 털어 버리고 오랫동안 순숙하여, 자연히 내외(주객)가 하나로 된다.

그것은 벙어리가 꿈을 꾼 것같이 다만 자기만 알고 있어서 타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갑자기 「무」가 폭발하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며 관우장군의 큰칼을 빼앗아 손에 든 것과 같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서, 생사의 안두에서 대자재를 얻어 육도사생의 미혹한 세상에서도 유허삼매가 되리라.

자아, 어떻게 문제를 제시할 것인가. 평생 기력을 다하여 한가지 「무」자를 들어보자. 만일 끊어지지 않는다면 법의 등불에 불을 붙이면 곧 확하고 불이 켜지는 것처럼 똑같은 것이다.

 
③ 영성적인 근접성

여기에 소개되는 두작품은 각각 그리스도교와 선불교의 대표적인 영성 수련의 방법론 내지는 영성의 모델이라 하겠는데, 두 작품에서 공통적인 체험의 방법으로는 부정의 길(Via negativa)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관상의 최고의 경지에 놓인 인간의 무지에 대한 자각을 드러내는 「무지의 구름」을 선불교에서는 「無」라는 화두에서 이질감없이 수용하고 있다.

또 선불교의 무자화두에 나타난 '삼백육십 골절과 팔만사천 털구멍을 가지고 전신으로 한 개의 의심 덩어리가 되어 이 한가지 「무」자를 들어 낮이고 밤이고 하루종일 이것을 문제 삼아 들고 있기를. 이 무자를 허무의 무자로 이해하지 말라. 유무의 무자로 이해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망각의 구름을 지나 무지의 구름 앞에선 관상가의 처절한 수행과 비교될 수 있다.

또 실체에 대한 체험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의 영성 전통 안에 사변적인 방법과 감성적인 방법으로의 구분되고 있음은 선불교의 점수(漸修) 돈오(頓悟)적인 성향 구분과 견줄 수 있다. 즉 사변성은 점수이며, 감성성은 돈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치하고 있는 것은 실체의 진리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러한 단일한 진리의 표현 양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여러 종교가 지닌 제도적인 양태로 본다면 종교 다원주의적 현대 상황의 종교의 다양성은 당연한 것이며, 서로의 이해 관심 안에 진리의 궁극성이 영성적인 통일성 안에 포용될 수 있겠다.

 
4. 맺는 말

그리스도교와 불교, 이밖에 여러 종교간의 상호 대립적인 양상은 하나의 진리에 대한 여러 갈래의 표현 양식이라 보고, 이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하였다. 이를 보다 명확하게 하여주는 이는 신라 시대의 화쟁 국사(和諍國師)라 일컫는 원효에게서 들으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화쟁이란 불교 신앙 안에서 다양한 경향의 경전이나 여러 종파의 상호 대립하는 가르침들의 내용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화해 융화시키는 원효 특유의 해석학적 방법을 말한다. 원효는 그의 화쟁의 논리를 가지고 종파적 다툼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교리적인 논쟁을 없애는 화쟁의 방법을 실천하였다.

원효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서문에 나오는 글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헛되고 헛된 논의가 구름 달리듯 하여, 혹은 말하기를 내가 바르고, 남은 바르지 못하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내가 옳고 남은 옳지 못하다 하여, 드디어 그러한 형세가 강물과 같이되었다."

또 원효는 그의 「열반경 종요(涅槃經 宗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교의 뭇 경전의 부분들을 통합하면 만 가지의 이론들의 흐름들이 하나의 의미에로 돌아가고 부처의 지극한 뜻을 열면 수많은 학파의 서로 다른 이론들이 화합할 수 있다."

원효의 이 말은 그의 화쟁사상의 목적과 방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원효는 어느 한 경론(經論)에 치우치지 않고 많은 경론들을 두루 연구하여, 주소(註疎)를 달았다. 화엄경 종요(華嚴經 宗要), 열반경 종요(涅槃經 宗要), 법화경 종요(法華經 宗要) 등 17개의 종요를 저술하였다. 여기서 "종요(宗要)"의 '종(宗)'이라 함은 '다(多)로 전개하는 것이고, '요(要)'라 함은 '일(一)'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효의 화쟁논리는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의 이념에 바탕하여 모든 차별을 평등 무차별의 일심의 큰 진리 안에서 통일하는 진리의 다원주의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성립시키고자 하는 원효의 화쟁의 논리는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의 중심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종교간의 대화의 이론에서 통일성의 논리와 다양성의 논리에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 문헌 및 책자

1. 정성호 역, 무지의 구름, 성바오로 출판사,1987.

2. 가톨릭 대사전/ 영성사의 여러 서적

3.  秋月龍珉. 秋月眞人 저, 혜원 역,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강독, 운주사,1996

4. 李鍾益, 민족사(1989), 「元曉의 十門和諍論硏究」, [元曉聖師의 哲學世界」.

5. 金善根, 「元曉의 和諍論理小考」, 「東國大學校 硏究論文集」 제2집.

6. 門肋佳吉, 金允柱 역, 禪과 聖書, 분도 출판사,1985.

1)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비그리스도교 2항.

2) 金善根, 「元曉의 和諍論理小考」, 「東國大學校 연구논문」 제2집,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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