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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 극복(1)

2004/01/10

내    용

제목 없음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비교

1. 불교와 그리스도교 두 종교간의 차이점과 동질성


인간이 문화를 이루면서 진화하는 과정 안에 고등종교 형식도 생겨났다. 물론 종교라는 틀 안에 담겨있는 진리는 분명 진화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본래적인 항구성을 지닐 것이며 진리의 표현 양상이 동양과 서양이 다르듯이 다르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본 페이지에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두 종교간의 형식의 차이점을 살펴보고 그러한 다른점을 상호 긍정적으로 인식하여 종교들이 함축한 진리 즉 영성 자체의 일치성을 부곽시켜 진리의 보편성 안에서 온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두 종교간의 차이점

그리스도교는 이 세계의 기원과 근거를 인격적 유일신에게서 보는 반면, 불교는 존재하는 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면서 일체의 기원적 존재, 인격적 신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신의 주도권을 보고 신은 신, 인간은 인간에 한정하여 신과 인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을 말하고 있는 반면, 불교는 어떤 궁극적 실재를 인정하기 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일적이고 우주적 불성으로 파악한다.


동질성에의 접근

위와 같은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세계에서 선행을 추구하면서 이 세상을 올바르게 하려는 근본 원리를 가르치고 선포하며, 동시에 그러한 원리를 지금 주체적으로 실현할 것을 요청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즉, 불교든 그리스도교든 현재 드러나 있는 현실은 그 일상을 일상되게 해주는 원천적 진리와 사실에 근거하며, 그러한 진리를 구체화한 붓다 · 예수를 통해 그 진리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종교를 비교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구조적 유사성'이라 규정하면서, 그 유사성을 적절히 보여주는 예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구원론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 [대승기신론]은 지난 이천여년 동안 가장 고전적인 '대승불교통론'으로 받아들여지고 다양하게 해석되어온 대표적인 책이며, [요한복음]은 지난 이천여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신앙적 지침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4복음서 중 대표적인 복음서이다.

* [대승기신론]은 불교의 체계적 논리와 분석들을 담고 있는 전통적 대승불교 '논서'(論書)인 반면,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된 예수에 관한 전승 모음집에 가깝다.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과 요한복음의 빛과 어둠

1. 일심이문(一心二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핵심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대승'(大乘)과 '기신'(起信)에 있다.
'대승', 즉 '큰 수레'(Mah y na)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절대 진리이며, 그것이 다름 아닌 '중생의 마음(衆生心)'이며, 중생의 마음이 '생사의 세계'(世間法)와 '생사를 넘어선 세계'(出世間法)의 모든 존재들을 포괄하는 절대 진리 자체라는 것이다. 즉, '진여의 문'(眞如門)과 '생멸의 문'(生滅門)이다.
'진여의 문'이란 중생의 마음이 지닌, 본래 한결같고 변화가 없는 본체의 측면이고, '생멸의 문'이란 말 그대로 생멸변화하는 현실적 마음의 측면이다.
일체의 번뇌를 떠난 진여 그 자체로서의 측면이 중생심의 본체라면, 이러 저렇게 움직이고 흔들리며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중생심의 측면을 '생멸문'이다.
이렇게 마음이 이리 저리 흔들리고 동요하며 육도(六道)에 윤회하는 이유는 '무명'(無明) 때문이다.
무명은 인간의 원초적 어둠으로 [대승기신론]에서는 굳이 이 무명의 기원을 밝히려고 하지 않고, 다만 이 무명이 스며들면서 생멸변화를 일으킨다는 안타까운 현실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동요하는 마음에서 '하나인 마음'의 본래적 순수함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무명은 중생이 그 본래적 사실에 대한 '믿음을 일으킴'(起信)으로써 극복해야 할 미망의 세계인 것이다.

원천적인 차원에서 보면, 무명은 진여에 근거하고 있는 깨달음의 세계와 다른 것도 아니다.
생멸문은 미망의 세계이며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여로서의 중생의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별도의 것도 아니다. 이는 깨치지 못한 미망의 세계 역시 본래 대승 자체인 중생의 마음에 근거해 있고,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멸문이라 하지만, 그 본체는 진여이며, 따라서 생멸문에도 현상계를 포함하는 '깨달음의 세계'(覺)가 이미 들어있다. 이 깨달음의 세계를 담고 있는 중생의 마음을 '여래장'(如來藏)이라 부른다.
중생 안에는 그 생멸변화에 상관없이 여래성, 즉 깨달음의 세계가 이미 들어있는 것이다.
이미 들어있는 깨달음의 세계, 이것이 중생심의 본체론적인 측면, 즉 '진여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문으로서의 마음과 생멸문으로서의 마음이 별개의 실재가 아니라고 말하며, 비유컨데 바닷물과 파도, 진흙가루와 옹기의 관계와도 같은 관계라 한다.
진여와 생멸은 모두 중생의 '한 마음'(一心), 즉 궁극적 실재의 이중적 표현인 것이다.


2. 빛과 어둠

[요한복음]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이 '말씀'은 만물의 창조와 생성 이전부터 선재해 있는 만물의 존재 원리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세상은 근원적으로 이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즉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1고린 8,6; 로마 11,36 참조)
[대승기신론]에서 중생심의 본체가 본래 진여와 같다고 하듯이, [요한복음]에서는 만물이 근원적으로 말씀으로 말미암은 피조물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면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하느님과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며 인간이 긍정하든 부정하든 하느님에 의해 인간의 경험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 있는 '원사실'(primordial fact)인 것이다.
본래 깨달음이 주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한 채 무명에 휩싸여 있다고 하듯이, 불행히도 세상은 어둠에 가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요한 1,4-5): "그분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1,10).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고 있었고"(1,5),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3,19a).
즉, 빛을 밝혀줄 이가 이미 이르렀지만, 죄악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3,20)

[대승기신론]에서도 무명의 기원에 대해 굳이 분석하지 않는 것처럼, [요한복음]에서도 왜 사람들이 죄악에 빠지게 되었는지, 왜 어둠 속에 갇히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죄악에 빠져있다는 사실, 인간의 행실이 악해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고 있으나, 이미 빛이 와서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어둠은 빛이 비췰 때 사라지게 될 그 무엇이다.
아니 믿음의 빛으로 그 어둠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세상(1,10b)과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1,10a;10c)은 원천적인 차원에서 보면 다른 세상일 수 없다.
아무리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이 외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세상'(3,16a)이며, 아무리 어두운 듯 해도 이미 빛을 담지하고 있는 어둠이다.
이미 빛이 와 있기에 그 어둠 속에는 빛이 들어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1,5b) 비록 현상적으로는 어둠이 빛을 거부하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이 어둠이라는 것 역시 '실존론적' 차원에서 보면, 하느님과의 원천적 연결성을 이기지 못한다. 마치 불교의 생멸문의 본체가 진여이듯이.....
[대승기신론]에서 중생심이 본래 대승과 같다는 낙관적 자세에서 출발하듯이,..
[요한복음]에서도 어둠이 결코 이길 수 없을 빛의 세계에 대한 긍정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내리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읽고서 묵상과 참선의 주제로 삼아 보시길 ...

상기 내용은 이 찬 수 / 2000년종교학회발표논문을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필자가 쉽게 정리해서 올린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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