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개척에 대해 법원에서까지 판결이 내려져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정책이나 환경과
생명의 전문가도 아닌 법원의 판결이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생명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판결의 대상이기에 앞서
정성을 다하는 실천에 있다 하겠습니다. 다음은
광명월보 2001년 6월(제 95호)호, 필자의
논단을 다시 패스해드립니다. 생태적
영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 - 새만금
갯벌과 생태적 시각(빛과세상
월보 제 95호)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지역에 이르는 새만금 갯벌은 해양생물 산란과 서식지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며, 도요새의 서식지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환경적 중요성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만금 갯벌이 안정적인 식량 공급지 확보와 효율적인 국토 이용이라는
명분아래 1991년 11월 간척공사를 착수하여, 2011년까지 마무리 할 예정으로 강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환경보전(環境保全)을 주장하는 많은 단체들이 결사반대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찬반을 가르기보다 단지 생태적 시각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기를 제언한다.
‘개발’과 ‘환경보전’은 오랫동안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시하였다. 그러나 이 둘의 목표는 모두 복지(福祉)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발과 환경보전이 생명을 증대시키는 공동 선(善)의 길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 동반자가 될 수는 없을까? 필자는 생태적 깨달음에 철저할 때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생태적(生態的) 시각 안에는 인간중심적 오만보다는~ 모든 생명들의 복지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생명들의 안녕 없이는 인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생명의 연대적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유한한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생태현상의 실체에 대한 공경(恭敬
敬畏)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경은 이 세계와 자신을 올바른 입장으로 만날 수 있게 도와 준다. 우리가
이 세계와 올바른 입장으로 정돈되면, 개발이냐 보전이냐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는 극복되고, 자신의 사명과 책임에 즐겁게 헌신하여 보다 큰 생명을 현양(顯揚)하게 된다. 예컨대 당면한 식량문제를 간척에 의한 농지확보만이 최선이라 고집하기보다는 또 다른 방법도 찾아 볼 수 있다. 힘이 더 들더라도 보다 생명적인 길이라면 그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보다 큰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또
한편, 환경보전과 갯벌을 보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생명증진을 도모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인위적으로 변화된 환경은 무조건
환경파괴로만 단정한다면 인간은 자연의 포용성과
신의 관대함에 대한 신뢰심이 없어 자신의
창의력마저도 위축시키는 결과가 된다. 생명의
근본인 하늘을 공경하는 영적 중심성이 서고,
인간과 여타의 생명을 위한 따스한 마음으로
한데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시각에는 어느 집단의 이득이나 실적 누계, 정치적 타산 등은 무의미하고, 단지 모든 생명 하나 하나의 귀중함과 더불어 보다 큰 생명을 위한 실천이 있을 뿐이다.
- sun seed -
관련자료(월보
제 95호) ---▶ 바로가기
|